(대법원 2025다211104 판결문) 대법 "잘못된 과세, 부당이득인지는 '중대 하자' 여부 따져야"

대 법 원
제 2 부
판 결
사 건 2025다211104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의 소
원고, 피상고인 주식회사 A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원 심 판 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2. 14. 선고 2024나1940 판결
판 결 선 고 2025. 9. 4.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은행법에 따라 설립된 은행으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이하 ‘금융실명법’이라고 한다) 제2조 제1호의 ‘금융회사 등’에 해당한다.


나. 원고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금융거래자의 실명확인절차를 거친 후 금융거래를 하였고, 금융거래자에게 배당 및 이자를 지급할 때에는 소득세법의 일반세율 14%를 적용하여 소득세를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였다.


다. 남대문세무서장은 “검찰의 수사, 국세청의 조사 등에 의해 사후적으로 차명계좌임이 밝혀진 경우, 해당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세율(원천징수세율 100분의 90) 적용대상인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일부 계좌(이하 ‘이 사건 계좌’라고 한다)에서 발생한 이자소득 및 배당소득에 대해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라 원천징수세율 100분의 90을 적용한 세액과 기납부세액과의 차액을 납부하도록 원고에게 안내하였고, 그럼에도 원고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자 2019. 3. 5. 각 계좌 및 연도별 원천징수 이자소득세(2014~2017년도) 및 배당소득세(2014, 2017년도) 합계 50,263,450원을 납부고지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라.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위 고지세액 합계 50,263,450원(이하 ‘이 사건 납부금’이라고 한다)을 납부하였다.


마. 원고는 “이 사건 계좌는 단순 차명계좌에 불과하여 여기에 예치된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 제5조의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원고는 이 사건 납부금을 내게 되었는바, 이는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별도로 이 사건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채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납부금 상당액의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 제1, 2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금융실명법 제5조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으로 하며, 소득세법 제14조 제2항에 따른 종합소득과세표준의 계산에는 이를 합산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금융회사 등은 거래자의 실지명의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고 정함으로써 금융기관이 수범자가 되도록 한 금융실명법 제3조 제1항과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에 원천징수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이다. 위 제5조에서 말하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이란 금융기관과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의 실지명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을 의미한다.


한편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예금계약서에 예금주로 기재된 예금명의자나 그를 대리한 행위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당하고, 예금계약의 당사자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어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금계약 당사자의 해석에 관한 법리는, 예금명의자 본인이 금융기관에 출석하여 예금계약을 체결한 경우나 그의 위임에 의하여 자금 출연자 등의 제3자(이하 ‘출연자 등’이라고 한다)가 대리인으로서 예금계약을 체결한 경우 모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본인인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그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루어지고 그를 예금주로 하여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위에서 본 바와 달리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경우는,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 사이에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그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그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위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작성된 예금계약서 등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매우 엄격하게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3. 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이 사건 계좌가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계좌명의자의 실지명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설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출연자와 예금명의자가 상이한 차명계좌에 해당함을 전제로 살펴보더라도, 출연자가 예금명의자의 이름으로 예금을 하면서 예금명의자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는 경우인 이른바 ‘단순 차명거래’를 넘어서 예금계약상의 당사자를 자기 자신으로 정하는 이른바 ‘합의 차명거래’에 해당한다는 점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이상, 이 사건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 제5조의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위와 같은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거기에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사법적 법률관계와 공법적 법률관계의 구분, 금융실명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제3, 4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원심은, 피고가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세율을 적용한 세액과 기납부세액과의 차액을 납부하라는 내용으로 원고에게 이 사건 처분을 하였으나, 이는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관한 납부고지로서 징수처분의 성격을 갖는 데 불과하여 정당한 원천징수 소득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고,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관한 원천징수소득세의 경우 애당초 조세채무의 성립 및 확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 후속으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무효인 부과처분을 전제로 체납처분이 이루어진 경우 해당 체납처분이 무효로 귀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무효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토대로 원심은, 이 사건 처분에 따른 원고의 납부는 원천징수 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해서까지 세액을 납부한 것이거나 원천징수하여야 할 세액을 초과하여 납부가 이루어진 것으로서, 피고가 이 사건 납부금을 받는 순간 아무런 법률상 원인 없이 부당이득을 얻은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나.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조세의 과오납이 부당이득이 되기 위해서는 납세 또는 조세의 징수가 실체법적으로나 절차법적으로 전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과세처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이어야 한다. 과세처분의 하자가 단지 취소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할 때에는 과세관청이 이를 스스로 취소하거나 항고소송절차에 의하여 취소되지 않는 한 그로인한 조세의 납부가 부당이득이 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4. 11. 11. 선고 94다28000판결 등 참조).


나아가 과세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지 여부를 판별할 때에는 그 과세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의 목적ㆍ의미ㆍ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하여야 한다. 그리고 어느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 어느 법령의 규정을 적용하여 과세처분을 한 경우에 그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는 그 법령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져서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없음에도 과세관청이 그 법령의 규정을 적용하여 과세처분을 하였다면 그 하자는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 그 법령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하여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때에는 과세관청이 이를 잘못 해석하여 과세처분을 하였더라도 이는 과세요건사실을 오인한 것에 불과하여 그 하자가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다24240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이른바 ‘자동확정방식’으로 원천징수하는 소득세는 해당 소득금액을 지급하는 때에 납세의무가 성립함과 동시에 확정된다. 원천징수의무자가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에 따라 과세관청이 하는 납부고지 역시 원천징수의무와 원천납세의무의 존부 및 범위를
확정하는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단지 확정된 세액의 납부를 명하는 징수처분의 성격을 갖는 데 불과하다(대법원 2012. 1. 26. 선고 2009두14439 판결 참조). 다만 과세관청이 원천징수의무자가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그에 의해 납부된 세액이 정당한 세액에 미달한다고 보아 납부할 세액을 정하여 고지하는 경우, 과세관청의 의사는 이때 비로소 대외적으로 공식화되는 것이므로, 원천징수의무자가 위 납부고지에 따라 세액을 납부한 뒤 과세관청과는 견해를 달리함을 이유로 불복을 제기하고자 할 경우에는, 과세관청이 정한 세액과 관련된 하자가 중대하고도 명백하여 당연무효에 이르지 않는 한 곧바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징수처분에 대하여전심절차와 행정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구제를 받아야 한다(대법원 1974. 10. 8. 선고 74다1254 판결 참조).


3)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비록 이 사건 처분은 부과처분이 아닌 징수처분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피고가 이 사건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이 금융실명법 제5조의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한다는 잘못된 판단에 따라 행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 납부금이 곧바로 부당이득에 해당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을 금융실명법 제5조의 적용대상으로 잘못 판단한 데 따른 이 사건 처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 사건 납부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하게 된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처분 당시 남대문세무서장이 이 사건 계좌에 예치된 금융자산을 금융실명법 제5조의 적용대상으로 잘못 판단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에 이르는지에 관하여 추가로 심리함이 없이, 피고가 원고로부터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이 사건 납부금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 법률상 원인이 흠결되어 민법상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부당이득의 성립요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
하는 피고의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2다68294 판결 및 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7두18284 판결은 이 사건과 사안이 달라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다).


4. 결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대법관 엄상필
주 심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박영재

 

<대법원>